히어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환호 대신 사이렌 소리를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면, 그게 과연 승리일까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지켰는데 이름은 범죄자가 되는 결말. 그 씁쓸함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관람 환경에 따라 체감이 꽤 달라집니다. 놀란 감독이 오프닝 은행 강도 장면과 홍콩 시퀀스 등 여러 장면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입니다. IMAX 상영본에서는 그 구간만 화면 위아래가 확 열리면서 시야를 덮습니다. 저는 재개봉 IMAX 상영관에서 다시 봤는데, 조커가 은행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의 압박감이 집에서 볼 때와 비교가 안됐습니다. 화면비율이 바뀌는 순간 관객의 호흡도 같..
밀러 행성에서 돌아온 쿠퍼가 23년치 영상편지를 한꺼번에 확인하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제 손이 떨렸습니다. 시간 지연이라는 설정을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화면 속 머피가 "이제 아빠랑 나이가 같아졌어"라고 말하는 순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우주 SF가 아니라는 걸 그 장면에서 확신했습니다. 이 영화는 소리로 승부를 보는 작품이라, 어디서 보느냐가 감상을 크게 좌우합니다. 한스 짐머의 오르간 사운드와 도킹 장면의 저음은 일반 스피커에서는 절반쯤 사라집니다. 저는 처음 극장에서 본 뒤 집에서 다시 봤는데, 밀러 행성의 파도가 다가올 때 몸으로 오던 압박이 통째로 없어져서 당황했습니다. 놀란 담독이 대사가 소음에 묻히는 것을 의도했다고 밝힌 적도 있는데, 그 선택은 소리가 제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