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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가볍게 볼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한 장면이 계속 남아 있었어요. 정장을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70대 남성이 스타트업 사무실로 첫 출근하는 장면. 그게 왜 이렇게 오래 마음에 걸렸는지, 쓰면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벤 위틀리가 보여준 것 — 경험의 태도
영화 《인턴(The Intern, 2015)》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벤 위틀리는 37년 경력의 전직 임원입니다. 그가 시니어 인턴십(Senior Internship) 프로그램에 지원해 패션 이커머스 스타트업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시니어 인턴십이란 은퇴 이후의 고령자가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 기업들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고령자 재취업 지원 정책과 맞물려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벤이 첫날 출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인 동료들 사이에서 혼자 넥타이를 매고 나타납니다. 처음엔 저도 '어색해 보인다'고 느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눈치 없음이 아니었어요. 일하러 가는 자리에 대한 그 사람 나름의 예의였습니다.
그다음 장면에서 벤은 자기 책상 서랍에 계산기, 만년필, 손수건을 하나씩 꺼내 정리합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어요. 제 경험상 이런 사람은 회사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뭔가를 과시하거나 내세우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제가 가장 마음이 뭉클했던 장면은 사무실 한가운데 어질러진 책상이었습니다. 다들 불편해하면서도 아무도 손대지 않던 그 자리를, 벤이 어느 날 밤 조용히 치워놓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놀라는데 그는 자기가 했다고 말하지도 않아요. 저는 그 장면 하나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부 알 것 같았습니다. 인정받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눈에 보였으니까 한 거잖아요.
- 첫 출근날 정장과 넥타이 — 자리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식
- 아무도 시키지 않은 책상 정리 —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보였으니까 하는 행동
- 어질러진 동료 자리를 밤에 조용히 정리 — 생색 없는 태도
- 페이스북 계정 만드는 법을 젊은 동료에게 배우는 장면 — 겸손함이 곧 경쟁력
여기서 저는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이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일에 임하는 태도 전반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벤이 보여주는 건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바로 이 태도였어요. 그리고 그게 서른 살 어린 동료들에게 그 어떤 설명 없이 전달됐습니다.
출처: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50대 이상 고령 노동자의 재취업 성공 요인 1위는 '직무 역량'이 아닌 '대인 관계 및 태도'였습니다. 벤 위틀리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세대 협업이 어색한 분들께 — 이 영화가 건네는 해법
제가 직접 여러 세대가 섞인 팀에서 일해봤는데, 솔직히 세대 협업(Intergenerational Collaboration)은 처음엔 꽤 불편했습니다. 세대 협업이란 서로 다른 연령대, 즉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구성원들이 한 팀으로 함께 일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소통 방식, 일하는 속도, 우선순위 설정까지 거의 모든 게 달라서 충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영화에서 줄스(앤 해서웨이)가 처음에 벤을 대하는 태도가 딱 그랬어요. 나이 많은 인턴이 온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해했고, 일도 안 맡기려 하고 대화도 피하려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행동한 적이 있어서, 그 장면이 유독 찔렸습니다.
그런데 줄스가 마음을 열게 된 건 벤이 자기 경험을 내세웠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 번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벤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줄 몰라서 젊은 동료에게 배우고, 자기보다 서른 살 어린 상사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40년을 일한 사람이 "여기서는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 저는 그게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여기서 저는 경험이라는 개념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흔히 경험치(Experience Value)라고 하면 시간이 쌓이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수치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경험치란 어떤 분야에서 실제로 겪은 일의 양과 질이 합산되어 형성되는 역량 자산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벤을 보면 시간이 아니라 태도가 경험치를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40년을 일해도 자기 방식만 고집하면 그건 경험이 아니라 고집이 되고, 반대로 처음에 와서도 배울 준비가 돼 있으면 경험은 계속 쌓입니다.
출처: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국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약 530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직장 안에서 세대 협업은 선택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현실에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합니다. 나이가 무기가 되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겸손이 필요하고, 나이 차가 장벽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손대지 않아도 될 자리를 조용히 치워두는 사람이 한 명쯤 있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인턴》은 어떤 분들이 보면 좋나요?
A. 직장에서 세대 차이로 불편함을 느껴본 분들, 또는 경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 중인 분들께 특히 잘 맞는 영화입니다. 제 경우엔 팀 내 소통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에 봤는데, 정작 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오래 남는 영화예요.
Q. 시니어 인턴십 제도가 실제로 있나요?
A. 네, 실제로 존재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의 일부 대기업은 은퇴 후 고령자를 인턴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고령자 재취업 지원 사업이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영화 속 설정이 현실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Q. 이 영화에서 벤이 줄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나요?
A.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보면서 놀란 부분이기도 한데, 벤이 직접적인 조언을 하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소합니다. 운전을 대신해주고, 손수건을 건네주고,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 정도예요. 그 태도 자체가 줄스에게는 조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Q. 나이가 많으면 직장에서 경험을 인정받기 어렵지 않나요?
A. 제 경험상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경력을 먼저 내세우면 오히려 거리가 생기고, 배울 준비가 돼 있다는 걸 먼저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이더라고요. 영화가 그 과정을 조용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결론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건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벤이 서랍을 정리하는 손길이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자기 자리를 갖추는 사람. 그 태도가 결국 주변을 움직였습니다.
경험이 많다는 것과 경험을 잘 쓴다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오래 했으니 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오래 했지만 여기서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빠르게 신뢰를 얻는다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줬습니다. 세대 협업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먼저 내세우기보다 조용히 치우는 쪽을 선택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