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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보게 만든 게 있었습니다.

 

작품 정보

  • 원제: The Grand Budapest Hotel
  • 감독·각본: 웨스 앤더슨
  • 출연: 레이프 파인스, 토니 레볼로리, 시얼샤 로넌, 에이드리언 브로디, 윌럼 더포, 틸다 스윈튼
  • 국내 개봉: 2014년 3월 20일
  • 러닝타임: 99분 / 청소년관람불가

볼 수 있는 곳 (2026년 9월 9일 확인)

  • 디즈니플러스 — 구독 시청

저는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지금은 내려갔더군요. 구독 서비스는 이렇게 자주 바뀌니 보시기 전에 한 번 검색해보세요.

 

멘들 상자만 나오면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유산을 둘러싼 소동극에 감옥 탈출이 붙고 추격이 이어집니다. 저는 그런 결의 이야기에 잘 몰입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인물들에게 정이 붙기 전에 장면이 넘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보게 만든 건 화면이었습니다. 특히 멘들 케이크 상자가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어요. 연분홍 상자에 파란 리본이 묶여 있고, 열면 파스텔 색 과자들이 정확한 자리에 놓여 있잖아요. 그게 감옥에 숨겨 들어가는 도구로도 쓰이고 군인을 매수하는 물건으로도 쓰이는데, 어떤 상황에 놓여도 그 상자만 화면에 들어오면 장면 전체가 예뻐지더라고요.

이 감독의 방식은 거의 강박에 가깝습니다. 호텔이든 교도소든 제과점이든 화면이 정확히 좌우대칭이고, 수직과 수평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배우들 동선도 마찬가지예요. 뛸 때조차 발을 맞추고, 나란히 걸을 때 간격이 자로 잰 듯합니다. 카메라 앵글도 거의 고정되어 있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상이 아니라 그림책 삽화를 넘기는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까지 네 개를 가져갔습니다. 상을 받을 만하다는 걸 보는 내내 느꼈어요.

 

화면이 잘린 줄 알았는데 그게 신호였습니다

보다가 좌우가 잘려 있길래 제 화면이 이상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1930년대 파트로 넘어갔다는 신호더라고요.

찾아보니 시대마다 화면비가 다릅니다. 그 시절에 실제로 쓰던 비율을 그대로 가져온 거예요.

시점 화면비 화면에서 보이는 것
현재 1.85:1 일반적인 와이드 화면
1985년 1.85:1 (작게) 같은 비율인데 크기가 줄어듦
1968년 2.39:1 좌우로 길쭉한 시네마스코프
1932년 1.37:1 좌우에 검은 띠, 거의 정사각형

액자가 한 겹씩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화면 모양이 바뀝니다. 그걸 알고 나니까 보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화면이 바뀔 때마다 아, 지금 시대가 넘어갔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니까요.

호텔 자체도 시대별로 완전히 다릅니다. 1932년의 호텔은 화려하고 손님으로 북적이는데, 1968년에는 낡고 텅 비어 있어요. 같은 공간인데 색이 빠지고 사람이 사라집니다.

그 화려함이 오히려 슬프게 느껴진 이유

이 영화가 왜 그렇게까지 화려한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오히려 슬프다고 느꼈어요.

배경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알프스 어딘가에 있다는 주브로브카라는 가공의 공화국이죠. 그리고 이야기는 1932년, 1968년, 1985년, 그리고 현재까지 네 겹으로 겹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그 찬란한 호텔은 지금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 속의 호텔인 거예요.

그래서 화면비가 바뀌는 장치가 그냥 멋 부린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파트가 좁은 화면 안에 갇혀 있는 건, 그 시절이 이미 액자 안에 들어가버린 과거라는 뜻이잖아요. 우리는 그 시대를 그 시대의 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겁니다.

구스타브라는 인물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그는 예의와 격식에 집착하고, 향수를 뿌리고, 시를 읊습니다. 전쟁이 코앞까지 온 세상에서 혼자 우아함을 지키려 하죠. 그게 우스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서글퍼집니다. 그가 지키려던 세계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걸 관객은 알고 있으니까요.

결국 이 영화의 그 완벽한 대칭 구도와 파스텔 색채는 사라진 것에 대한 애도 같았습니다. 이미 없어진 세계라서 저렇게까지 아름답게 기억되는 거겠죠. 이야기에 마음이 붙지 않았는데도 화면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 같아요.

자주 묻는 질문

Q. 화면비가 계속 바뀌는데 정상인가요?
A. 네, 의도된 겁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 시절에 쓰던 비율로 갈아탑니다. 좌우가 잘려 보여도 고장 아니에요.

Q. 웨스 앤더슨 처음인데 볼 만할까요?
A. 입문작으로 괜찮습니다. 다만 인물에 정 붙이는 영화는 아니에요. 화면 보는 재미로 가시면 됩니다.

Q. 청소년관람불가인 이유가 뭔가요?
A. 코미디 톤인데 의외로 폭력 묘사가 직접적입니다. 잘린 손가락 같은 장면이 갑자기 툭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