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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레미제라블을 그냥 유명한 뮤지컬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2012년 톰 후퍼 감독 작품이고,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것도 나중에 찾아봤을 정도예요. 막상 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히 잘 만든 뮤지컬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판틴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서 저는 화면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립싱크 없이 찍은 현장 녹음, 그게 그 눈물의 정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뮤지컬 영화는 미리 녹음된 음원에 맞춰 배우가 립싱크(lip sync)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립싱크란 사전 녹음된 음악을 틀어놓고 배우가 입 모양만 맞추는 방식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가 이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음질 안정성과 연기의 완성도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레미제라블은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라이브 보컬 레코딩(live vocal recording)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쉽게 말해 배우가 연기하면서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노래를 부르고, 그 소리를 그대로 담는 방식입니다. 촬영 현장에서 이어피스로 피아노 반주만 흘려주면, 나머지는 배우가 그 순간의 감정 그대로 소리를 냅니다.
판틴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서 저는 그게 왜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숨이 갈라지고, 음이 흔들리고, 콧물이 그대로 나오는데 그게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거든요. 나중에 현장 녹음 방식을 알고 나서야 정리가 됐습니다. 잘 부른 노래가 아니라, 그 순간 그 사람이 낸 소리를 담은 거였던 겁니다.
앤 해서웨이가 그 장면에서 실제로 자기 머리를 잘랐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영화 속 판틴의 절망이 연기가 아니었다는 걸, 보는 내내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다시 봤을 때, 이번엔 왜 힘든지를 알면서도 똑같이 힘들었습니다.
자베르는 악당이 아니었습니다, 원칙의 순교자였습니다
레미제라블을 처음 본 분들 중에 자베르를 단순한 악역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자베르를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자베르는 법 실증주의(legal positivism)의 완벽한 체현입니다. 법 실증주의란 도덕이나 감정과 무관하게 법 자체가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자베르에게 죄인은 언제나 죄인이고, 세상은 규칙대로 굴러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평생 쌓아 올린 신념 체계였습니다.
그런데 장발장이 자기를 살려주는 순간, 그 체계가 통째로 무너집니다. 장발장이 선한 인간이라면 자베르가 수십 년간 바친 원칙이 틀렸다는 뜻이 되니까요. 자베르는 패배해서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게 아닙니다. 자기가 딛고 선 세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설 곳이 없었던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은 우리 주변에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원칙을 신의처럼 믿다가, 그 원칙이 한 번 틀렸을 때 자기 자신까지 무너지는 사람들. 자베르의 비극은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용서를 배운 적이 없어서였습니다. 용서를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방법도 없더라고요.
- 자베르는 법을 악용한 게 아니라 법을 완벽히 믿었습니다
- 장발장의 용서는 자베르의 세계관 자체를 붕괴시킨 사건이었습니다
-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닌 존재론적 붕괴에 가깝습니다
- 원칙만으로 사는 삶이 왜 위험한지, 이 영화만큼 정확히 보여주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은촛대 하나가 이 영화 전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입니다.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 전과자가 경찰에 붙잡혀 돌아왔을 때, 주교는 그건 내가 준 것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촛대까지 얹어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씨앗이라고 봅니다.
19년 감옥살이가 장발장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형사 사법 시스템(criminal justice system)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처벌은 억제와 교정을 목적으로 합니다. 여기서 교정이란 범죄자의 행동과 사고를 사회에 적합하게 되돌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처벌은 장발장을 더 단단하게 굳혔을 뿐이었습니다. 그를 바꾼 건 단 한 번의 용서였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설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읽었습니다. 주교의 행동이 현실성 여부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장발장에게 새로운 정체성의 근거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벌로 교정되지 않고 신뢰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이후 장발장의 모든 선택은 그날 받은 것을 갚아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실제로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연구들도 비슷한 결론을 냅니다. 회복적 사법이란 처벌 중심이 아닌, 피해 회복과 공동체 재통합을 목표로 하는 사법 철학입니다.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는 그 철학을 단 한 장면에 압축한 것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죽은 사람들이 다시 서는 마지막 장면, 그 눈물의 정체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참았던 게 터졌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전부 바리케이드 위에 다시 모여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판틴도 있고, 에포닌도 있고, 앙졸라도, 어린 가브로슈도 서 있었습니다. 이 영화 내내 한 명씩 죽어나갔던 사람들이 전부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결말 장면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연출로 해석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장면이 울린 건 희망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헛되이 죽지 않았다는 감각, 그리고 그 죽음이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겹쳐서 들어왔습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효과를 설명할 때 쓴 용어로, 쉽게 말해 슬픔과 공포를 통해 감정이 정화되고 해방되는 경험을 말합니다. 저는 그 마지막 장면이 정확히 그 경험이었습니다. 슬픈데 이상하게 힘이 났고,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습니다.
극장에서 봤다면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집에서 혼자 봤는데도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레미제라블이 1980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그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출처: Les Misérables 공식 사이트).
자주 묻는 질문
Q. 레미제라블 영화에서 립싱크를 안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2012년 톰 후퍼 감독의 영화 레미제라블은 기존 뮤지컬 영화와 달리 라이브 보컬 레코딩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배우들이 촬영 중 이어피스로 피아노 반주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 소리가 그대로 최종본에 담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방식이 음질 면에서 불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보면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높입니다.
Q. 자베르는 왜 마지막에 자살하나요?
A. 자베르의 죽음은 단순한 패배가 아닙니다. 그는 평생 법을 절대 기준으로 삼았는데, 장발장이 자기를 살려주는 순간 그 신념 체계가 더 이상 세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죄인은 언제나 죄인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틀렸다면, 자베르의 삶 전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죠. 그가 뛰어내린 건 자기 원칙이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Q. 앤 해서웨이가 실제로 머리를 잘랐나요?
A. 맞습니다. 앤 해서웨이는 판틴 역할을 위해 촬영 현장에서 실제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 장면은 현장 녹음과 실제 이발이 동시에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 연기로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많은 평론가들이 해당 장면을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으로 꼽습니다.
Q. 레미제라블 원작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큰가요?
A.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은 1,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영화는 1980년 초연 뮤지컬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소설의 모든 서사를 담기보다는 장발장·자베르·판틴·코제트를 중심 축으로 압축했습니다. 원작에는 워털루 전투, 파리 하수도 시스템 등에 대한 긴 서술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대부분 생략됩니다. 소설을 먼저 읽으면 영화가 다르게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론
레미제라블은 저에게 세 가지를 남겼습니다. 처벌이 아닌 신뢰가 사람을 바꾼다는 것, 원칙만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리고 슬픔과 힘이 동시에 존재하는 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라이브 보컬 레코딩이라는 제작 방식이 그 모든 감정을 증폭시켰다는 걸 알고 난 뒤, 다시 봐도 같은 장면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가능하면 큰 화면에서 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누가 서 있는지 한 명씩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했더니 더 오래 자리를 지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