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족끼리 함께 있는데 오히려 더 외로웠던 적이 있습니다. 다들 각자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시간이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2006년 미국 영화고 조나단 데이튼과 발레리 파리스가 공동 연출했습니다. 러닝타임은 101분이에요. 저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봤습니다(2026년 9월 15일 확인). 실패한 사람들이 낡은 밴 한 대에 올라타 딸의 미인대회를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인데, 웃다가 이상하게 마음이 아픈 영화였습니다.
아빠가 무대로 올라가던 순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인 미인대회 무대입니다.
올리브가 할아버지가 짜준 안무를 추기 시작하는 순간 객석이 순식간에 얼어붙어요. 심사위원 표정이 굳고, 진행자가 달려와 아이를 내리라고 하고, 학부모들은 웅성거립니다. 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저 어린애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나 할까 싶어서요.
그때 아빠 리처드가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딸 옆에서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다음에 삼촌이 올라가고, 오빠가 올라가고, 결국 온 가족이 무대 위에서 엉망으로 춤을 춥니다. 저는 거기서 눈물이 났어요. 웃으면서 우는 이상한 상태였습니다.
저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패한 사람들이잖아요. 성공학을 가르치면서 파산 직전인 아빠, 힘든 시기를 지나 회복 중인 삼촌, 몇 달째 말을 안 하는 오빠. 그런 사람들이 딸 하나 창피하지 말라고 자기 체면을 통째로 던지는 겁니다.
서로를 자랑스러워해서 뭉치는 게 아니라, 저 애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올라가는 거잖아요.
이 장면이 저한테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것도 못 얻고 돌아왔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자와 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리처드가 그 상징이에요. 9단계 성공 이론을 만들어놓고 세상에는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 두 종류만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사업은 무너지고 있죠.
이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저도 한때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했던 시절이 있어서요.
대회장에 도착해보면 거기 있는 아이들은 전부 완벽하게 훈련돼 있습니다. 화장과 의상과 동작이 다 계산돼 있고, 이 대회가 요구하는 기준은 올리브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어요. 다시 봤을 때 처음보다 더 불편했습니다. 올리브는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들어간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은 올리브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닙니다. 그 무대에 서느냐 마느냐예요. 실제로 가족들은 마지막에 올리브를 무대에 세우지 말자고 말리려 합니다.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던 거죠. 그런데 올리브는 무대에 오르고, 끝까지 춥니다.
돌아보면 이 여행에서 이룬 목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계약은 무산됐고, 오빠는 색맹이라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올리브는 상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여섯 명 모두 갈 때보다 나은 상태로 돌아옵니다.
결과가 아무것도 없어도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 리처드가 무대에 올라간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자기 이론을 스스로 버린 순간이니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한 건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해봤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를 남긴다는 감각에 가까웠어요.
이미 보신 분이라면 이번엔 리처드의 얼굴에 집중해서 다시 보시길 권합니다. 그가 무대에 올라가는 그 한 걸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용기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무대에서 가족이 왜 같이 올라가나요?
A. 올리브의 춤이 대회 분위기와 전혀 안 맞아서 진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거든요. 아이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Q. 9단계 성공 이론이 뭔가요?
A. 리처드가 만든 자기계발 프로그램인데, 세상엔 승자와 패자 두 종류만 있다는 이분법이 뼈대예요. 영화는 그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이 이론을 스스로 버리게 합니다.
Q. 오빠는 왜 말을 안 하나요?
A. 목표를 이룰 때까지 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정한 겁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색맹이라 그 길이 막혔다는 걸 알게 돼요. 목표 하나로 버텨온 사람이 그걸 잃는 순간이라 조용하게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