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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함께 있는데 오히려 더 외로웠던 적이 있습니다. 다들 각자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그런 시간이요.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을 처음 봤을 때 그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낡은 밴 한 대에 올라타서 딸의 미인대회를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인데, 웃다가 이상하게 마음이 아픈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무대 장면이 저를 무너뜨린 이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인 미인대회 무대입니다. 올리브가 할아버지가 짜준 안무를 추기 시작하는 순간, 객석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습니다. 심사위원들 표정이 굳고, 진행자가 달려와 아이를 내리라고 하고, 학부모들은 웅성거립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저 어린애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나 할까 싶어서요.
그런데 그때 아빠 리처드가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딸 옆에서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다음에 삼촌이 올라가고, 오빠가 올라가고, 결국 온 가족이 무대 위에서 엉망으로 춤을 춥니다. 저는 거기서 눈물이 났습니다. 웃으면서 우는 이상한 상태였습니다.
저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패한 사람들이잖아요. 성공학을 가르치면서 파산 직전인 아빠, 자살을 시도했던 삼촌, 9개월째 말을 안 하는 오빠. 그런 사람들이 딸 하나 창피하지 말라고 자기 체면을 통째로 던지는 겁니다. 이 장면이 저한테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를 자랑스러워해서 뭉치는 게 아니라, 저 애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올라가는 거잖아요.
이 영화는 2006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관객상을 수상했습니다. 선댄스 영화제란 매년 미국 유타주에서 열리는 독립영화 최대 행사로, 상업 자본에서 벗어난 작가주의적 시도들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무대입니다. 이 영화가 그 무대에서 관객을 가장 많이 사로잡았다는 사실이, 지금 돌아봐도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출처: Sundance Institute)
- 올리브: 미인대회 기준과 무관한 춤을 끝까지 추는 아이
- 리처드: 무대에 올라가며 자신의 '9단계 성공 이론'을 스스로 포기한 아버지
- 드웨인: 색맹 판정으로 파일럿의 꿈이 무너진 직후 무대에 올라간 오빠
- 프랭크 삼촌: 자살 시도 이후 회복 중에 조카와 함께 춤을 춘 인물
실패한 로드트립이 무의미하지 않은 이유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자와 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리처드가 그 상징입니다. 그는 9단계 성공 이론을 만들어놓고 세상에는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 두 종류만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사업은 무너지고 있죠. 제가 이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저도 한때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했던 시절이 있어서요.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로드트립 무비(road trip movie)'라는 장르적 서사 구조입니다. 로드트립 무비란 여정 자체가 인물들의 내면 변화를 이끄는 장치가 되는 영화 문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목적지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은 이 장르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그 결말을 의도적으로 뒤틀어 놓습니다.
미인대회장에 도착해보면 거기 있는 아이들은 전부 완벽하게 훈련돼 있습니다. 화장과 의상과 동작이 다 계산돼 있고, 이 대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pageant standard)은 올리브와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습니다. 여기서 pageant standard란 미인대회가 요구하는 외모·퍼포먼스의 획일화된 기준을 말하며, 이 영화는 그 기준이 얼마나 작위적인지를 올리브를 통해 드러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 처음 볼 때보다 더 불편했습니다. 올리브는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들어간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은 올리브가 대회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닙니다. 그 무대에 서느냐 마느냐입니다. 실제로 가족들은 마지막에 올리브를 무대에 세우지 말자고 말리려 합니다.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던 거죠. 그런데 올리브는 무대에 오르고, 끝까지 춥니다. 이 순간이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돌아보면 이 로드트립에서 이룬 목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계약은 무산됐고, 드웨인은 색맹이라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올리브는 상을 못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섯 명 모두 갈 때보다 나은 상태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가 '성장 서사(coming-of-age narrative)'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그것을 비틀어 활용하는 방식이 제겐 그래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성장 서사란 인물이 어떤 사건을 통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하는데, 이 영화에선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조금씩 달라집니다.
결과가 아무것도 없어도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 리처드가 무대에 올라간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자기 이론을 스스로 버린 순간이니까요. 이 영화를 만든 조나단 데이튼과 발레리 파리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패배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패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관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출처: Rotten Tomatoes, Little Miss Sunshine)
자주 묻는 질문
Q. 리틀 미스 선샤인은 어떤 영화인가요?
A. 일곱 살 소녀 올리브가 캘리포니아 미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가족이 낡은 밴을 타고 이동하는 로드트립 무비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실패한 가족 여섯 명이 함께 여정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인디영화로, 제가 직접 봤을 때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왔던 드문 영화였습니다.
Q. 마지막 무대 장면에서 가족이 왜 같이 올라가나요?
A. 올리브의 춤이 미인대회의 pageant standard와 전혀 맞지 않아 진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아버지 리처드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무대에 오릅니다. 올리브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였고,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도 바로 그 단순하고 절박한 선택 때문입니다.
Q. 이 영화에서 아버지 리처드의 9단계 성공 이론이 뭔가요?
A. 리처드가 개발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 두 종류만 있다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제가 이 캐릭터에서 불편함을 느낀 건, 그 이론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 방식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였습니다. 영화는 리처드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그 이론을 스스로 포기하는 장면으로 이 주제를 마무리합니다.
Q. 리틀 미스 선샤인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나요?
A. 네, 200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선댄스 영화제는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행사인 만큼, 이 수상은 상업적 계산 없이 만든 이 영화의 진정성을 관객과 심사위원 모두가 알아봤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Q. 드웨인은 왜 9개월 동안 말을 안 했나요?
A. 드웨인은 공군사관학교 입학을 목표로 삼으며 니체 철학에 심취해 침묵 서약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여행 중 자신이 색맹임을 알게 되고,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너집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게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목표 하나로 버텨온 사람이 그 목표를 잃는 순간이니까요.
결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한동안 생각한 건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끝까지 해봤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를 남긴다는 감각에 가까웠습니다. 올리브 가족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결말인데도, 그 여정이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마지막 무대 장면만이라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장면 하나가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미 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번엔 리처드의 얼굴에 집중해서 다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무대에 올라가는 그 한 걸음이,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용기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