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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시대가 유독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오래된 영화나 음악에 손이 갔는데, 어느 순간 그게 도피인지 취향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디 앨런의 2011년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이 낭만인지 회피인지, 이 영화는 웃기면서도 꽤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헤밍웨이가 읽기를 거절한 이유 — 황금시대의 환상이 작동하는 방식

파티에서 누군가를 소개받았는데 그게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면 어떤 표정이 될까요. 주인공 길(오웬 윌슨)이 딱 그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제가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길의 얼떨떨한 표정이 정확히 제 표정이었습니다. 책으로만 알던 대문호가 눈앞에 서 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웃기는데, 그 다음 대사에서 소리 내 웃었습니다.

길이 자기 소설 원고를 좀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자 헤밍웨이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형편없으면 싫어할 것이고, 괜찮으면 질투가 날 테니 어느 쪽이든 읽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근엄한 대문호가 아니라, 자존심 세고 말 많은 실제 인간처럼 구는 장면입니다. 피츠제럴드 부부는 사이가 안 좋고, 살바도르 달리는 코뿔소 얘기만 하고, 예술가들은 서로 헐뜯습니다. 제가 책으로만 알던 이름들이 술 마시고 다투는 사람들로 나오는 게 정말 재밌었습니다.

이 영화의 구조에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는 심리 기제가 정확히 작동합니다. 노스탤지어란 현재의 불만족이 과거를 실제보다 이상화하도록 만드는 심리 현상으로, 그리스어로 '돌아감(nostos)'과 '고통(algos)'의 합성어입니다. 길이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한 건 그 시대를 잘 알아서가 아닙니다. 약혼녀와는 대화가 안 통하고, 쓰고 싶은 소설은 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출구가 막힌 자리에 1920년대 파리가 들어선 겁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콘스탄틴 세디키데스 교수(영국 사우샘프턴대)의 노스탤지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재의 외로움이나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과거를 더 자주, 더 긍정적으로 회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University of Southampton, Constantine Sedikides). 길의 시간 여행은 판타지이지만, 그 심리 구조는 우리가 매일 겪는 것과 정확히 같습니다.

  •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달리 등 실존 예술가들이 '인간적인 결함'을 가진 존재로 등장해 황금시대의 신화를 해체한다
  • 노스탤지어는 현재의 불만족이 클수록 과거를 더 이상화하는 방향으로 강화된다
  • 길의 1920년대 동경은 취향이 아니라, 현재 삶의 공백을 채우려는 심리적 반응이다
요약: 황금시대는 특정 연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답답할수록 더 선명하게 보이는 심리적 투영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 — 노스탤지어의 역설과 현재로의 귀환

영화 후반부에서 길은 1890년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로 넘어갑니다. 벨 에포크란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유럽, 특히 파리가 문화·예술적으로 절정을 이루던 시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길이 황금기라고 믿었던 1920년대의 예술가들이 바로 그 시대를 동경했던 겁니다. 그런데 막상 1890년대로 건너가보니 그곳 예술가들도 똑같이 말합니다. "우리 시대는 공허하다, 상상력이 없다, 르네상스야말로 최고였다"고요. 저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웃음이 딱 멈췄습니다. 길과 똑같이 얼어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 이건 끝이 없는 구조구나 싶었습니다.

이 반복 구조가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길은 1920년대를 동경하고, 그 시대의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를 동경하고, 1890년대의 고갱은 르네상스를 동경합니다. 어느 시대에 가도 그곳 사람들은 지금 여기가 시시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영화 이론에서는 황금시대 오류(Golden Age Fallacy)라고 부릅니다. 황금시대 오류란 과거의 특정 시기를 실제보다 완벽한 것으로 믿으며, 현재는 항상 그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인지 왜곡입니다. 인지 왜곡이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감정이나 믿음에 따라 현실을 굴절시켜 해석하는 사고 패턴을 말합니다.

아드리아나가 벨 에포크에 남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결정적입니다. 길은 그 순간 자기 모습을 밖에서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이 저기 남아도 언젠가 또 다른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겁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안타까움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황금시대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도 그곳에 황금시대는 없다는 것을 길이, 그리고 저도 동시에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이 현재로 돌아와 한 일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단한 결심이 아닙니다. 안 맞는 약혼자와 헤어지고, 파리에 남아 소설을 쓰기로 하고, 음반 파는 여자와 빗속을 함께 걷는 것뿐입니다. 도망칠 시대를 찾는 대신 지금 자기 앞에 있는 것들을 손보기 시작한 겁니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 즉 마음챙김(Mindfulness)이 반추 사고와 회피 행동을 줄이는 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Mindfulness). 마음챙김이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경험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심리 훈련을 뜻합니다. 길의 마지막 선택이 바로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요약: 황금시대는 어느 시대에나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 있었다. 그 구조를 직시한 뒤에야 현재를 실제로 살 수 있게 된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드나잇 인 파리에 실제로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이 몇 명이나 되나요?

A.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젤다 피츠제럴드, 살바도르 달리,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폴 고갱,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등 다수의 실존 예술가와 작가가 등장합니다. 1920년대와 1890년대 인물들이 교차하며 나오는 구조라 한 편으로 파리 문화사를 훑는 효과도 있습니다.

 

Q. 황금시대 오류가 뭔지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A. 간단히 말해 "옛날이 더 좋았다"는 믿음이 실제보다 과장돼 있는 상태입니다. 과거는 기억 속에서 나쁜 부분이 지워지고 좋은 부분만 남는 경향이 있어서, 현재와 비교하면 언제나 과거가 더 나아 보이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 구조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Q. 이 영화가 그냥 가벼운 판타지 로맨스 아닌가요?

A. 표면은 확실히 가볍습니다. 1920년대 파리의 분위기와 유명 인물들의 유쾌한 묘사 덕분에 보는 내내 즐겁습니다. 그런데 아드리아나가 벨 에포크에 남기로 하는 후반부부터 영화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노스탤지어의 구조 자체를 반복 실험하는 장치가 꽤 치밀하게 설계돼 있어서, 한 번 보고 나면 단순한 판타지로 보기 어려워집니다.

 

Q. 우디 앨런 감독 본인도 과거를 동경하는 편인가요?

A. 우디 앨런은 여러 인터뷰에서 1920~30년대 재즈 시대에 강한 애착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 영화의 길이라는 캐릭터에 자전적 요소가 상당히 녹아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동경 자체를 영화 안에서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경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직시하는 구조입니다.

 

결론

지금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진짜 문제는 시대가 아니라 제가 지금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황금시대는 특정 연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발 딛지 않은 어딘가에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도 그곳 사람들은 또 다른 황금시대를 그리워합니다.

길이 마지막에 한 일은 소박합니다. 헤어질 관계와 헤어지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빗속을 걷는 것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아직 안 보셨다면 부담 없이 틀어두셔도 좋습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보다가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mai_bb/224346144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