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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던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저는 손에 꼽히는 그 목록 맨 앞에 이 영화를 올려둡니다.
작품 정보
감독 | 봉준호
출연 | 송강호, 김상경, 김뢰하, 박노식
개봉 | 2003년
러닝타임 | 131분
청소년관람불가
볼 수 있는 곳 (2026년 9월 16일 확인)
넷플릭스 — 구독 시청
※ 제공처는 자주 바뀌니 시청 전에 확인해보세요.

경운기가 발자국을 뭉개버립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박두만이라는 형사에게 분노했습니다. 눈만 보면 범인을 안다고 믿고, 자백은 발로 받아내는 사람이요. 그런데 여러 번 다시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무능이 사실은 한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건 현장에 경운기가 들어와 발자국을 죄다 뭉개버립니다. 지원을 요청해도 병력은 데모 진압에 나가 있어요. 피해 여성들을 향해서는 밤에 다니지 말라는 방송만 반복됩니다.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는 방향이 아니라 통제하는 방향으로 자원을 쓰고 있었던 겁니다.
결정적인 장면이 있어요. 유전자 분석으로 범인을 특정하려는 시도가 나오는데, 당시 한국에는 그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관이 없었습니다. 결과를 받으려면 미국에 의뢰해야 했고 답변이 오기까지 몇 달이 걸렸어요. 서태윤이 그 종이 한 장에 모든 걸 걸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형사 몇 명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하면 결국 손에 쥐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떠올리면 서늘합니다.
형사를 그만두고 외판원이 된 박두만이 오랜만에 그 논두렁을 다시 찾아갑니다. 배수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이가 얼마 전에도 어떤 아저씨가 똑같이 여기를 들여다봤다고 말해요.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아이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고 답합니다.
그 말을 듣고 박두만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그 순간 등이 굳었어요. 화면 속 인물이 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 전부를 훑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잖아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러 왔지 조사받으러 온 게 아닌데 왜 마지막에 이런 기분을 떠안게 되는 걸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을 소비하고 그냥 덮게 두지 않겠다는 것.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는 사람 몸에 새겨놓고 보내겠다는 것이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걸리는 것
다만 여러 번 보면서 걸리는 지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먼저 고문 장면의 처리 방식이에요. 조용구가 용의자를 짓밟고 물고문을 가하는 장면들이 초반에는 코믹한 리듬 안에 배치됩니다. 관객이 웃게 돼요. 후반에 조용구가 다리를 잃으면서 대가를 치르긴 하지만, 그 웃음의 대상이었던 백광호 같은 인물들의 고통은 끝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지금 기준으로는 편하게 넘기기 어렵고요.
피해 여성들의 자리는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대부분 이름 없이, 발견된 상태로만 화면에 등장합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몸을 꽤 오래 비추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거의 알려주지 않아요. 형사들의 무력감은 촘촘하게 그려지는 반면, 피해자는 사건의 배경처럼 놓여 있습니다.
2003년 연출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다시 보면 이 불균형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 바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실화를 소재로 삼는다는 건 누군가의 아직 아물지 않은 시간을 재료로 쓴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걸 말할 때마다 꼭 함께 꺼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느껴요. 훌륭한 영화라는 평가와 이 아쉬움은 함께 놓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봤거나 오래전에 본 뒤 기억이 흐릿한 분이라면, 스릴러나 수사극으로 보지 말고 1980년대라는 시대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보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에 박두만의 눈이 카메라를 향할 때 그 시선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그 질문과 함께 영화를 끝내는 경험이 이 영화가 진짜 하려는 말일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지막에 카메라를 쳐다보는 이유가 뭔가요?
A. 관객이 이야기 속에 편안하게 앉아 있지 못하도록 벽을 깨는 연출입니다.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고, 어쩌면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Q. 실제 범인은 나중에 잡혔나요?
A. 2019년 이춘재가 자백하면서 사건이 해결됐습니다. 영화 개봉으로부터 16년, 사건 발생으로부터 33년 뒤였어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 형사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Q. 그냥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범인을 쫓는 과정보다 그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범인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전체에 대한 질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