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한동안 걸음이 떼지지 않았던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저는 손에 꼽히는 그 목록 맨 앞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을 올려둡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 영화는 범인을 쫓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묵직한 것을 남겼습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시대적 맥락 —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실패였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박두만이라는 형사에게 분노했습니다. 눈만 보면 범인을 안다고 믿고, 자백은 발로 받아내는 사람. 그런데 여러 번 다시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무능이 사실은 한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건 현장에 경운기가 들어와 발자국을 죄다 뭉개버립니다. 지원을 요청해도 병력은 데모 진압에 나가 있어요. 피해 여성들을 향해서는 "밤에 다니지 말라"는 방송만 반복됩니다. 이건 1980년대 한국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구조적 실패였습니다. 여기서 구조적 실패란, 국가 시스템이 시민을 보호하는 방향이 아닌 통제하는 방향으로 자원을 배분했다는 뜻입니다.

결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DNA 감정, 즉 유전자 분석을 통해 범인을 특정하려는 시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그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관이 없었어요. 결과를 받으려면 미국 FBI에 의뢰해야 했고, 답변이 오기까지 몇 달이 걸렸습니다. 서태윤이 그 종이 한 장에 모든 걸 걸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형사 몇 명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스템이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면 결국 손에 쥐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지점을 꽤 정밀하게 묘사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졌고, 당시 수사 기록만 수만 장에 달했지만 결국 미제로 남았습니다. 2019년 이춘재가 자백하기까지 33년이 걸렸습니다(출처: 경찰청). 그 33년의 무게를 영화는 두 형사의 허탈한 눈빛으로 압축해 냈습니다.

  • 사건 현장 오염: 경운기 진입으로 물리적 증거 훼손
  • 수사 역량 부재: 시위 진압에 경찰력 집중 배치
  • 과학수사 인프라 미비: DNA 감정을 미국 FBI에 의뢰해야 했던 현실
  • 피해자 보호 부재: 여성에게 귀가를 종용하는 방송으로 책임 전가
요약: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범인이 아니라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 시대의 구조적 실패입니다.
 

 

마지막 장면과 피해자 재현 — 영화가 남긴 불편함에 대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떠올리면 서늘합니다. 형사를 그만두고 외판원이 된 박두만이 오랜만에 그 논두렁을 다시 찾아갑니다. 배수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이가 얼마 전에도 어떤 아저씨가 똑같이 여기를 들여다봤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아이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고 답하죠.

그 말을 듣고 박두만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저는 그 순간 등이 굳었어요. 이 연출 기법을 영화 이론에서는 브레히트적 소외 효과(Brechtian alienat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관객이 이야기에 편하게 몰입하지 못하도록 극 중 인물이 의도적으로 허구의 벽을 깨고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화면 속 인물이 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극장에 앉은 사람들 전부를 훑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잖아요.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못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러 왔지 조사받으러 온 게 아닌데, 왜 마지막에 이런 기분을 떠안게 되는 걸까.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을 소비하고 극장을 나서게 두지 않겠다는 것.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관객 몸에 새겨놓고 보내겠다는 것.

다만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걸리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우선 고문 장면의 처리 방식이에요. 조용구가 용의자를 짓밟고 물고문을 가하는 장면들이 초반에는 코믹한 리듬 안에 배치됩니다. 관객이 웃게 됩니다. 후반에 조용구가 다리를 잃으면서 일종의 응보를 치르긴 하지만, 그 웃음의 대상이었던 백광호 같은 인물들의 고통은 끝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지금 기준으로는 편하게 넘기기 어렵습니다.

피해 여성들의 자리는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영화에서 살해된 여성들은 이름이 불리기는 하지만 인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시체로 처음 등장하고, 카메라는 그 몸을 꽤 오래 비춥니다. 사건의 참혹함을 전달하려는 선택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서사의 중심은 언제나 그들을 쫓는 남자들에게 있습니다. 두 형사의 좌절과 성장은 촘촘히 그려지는데, 죽은 사람들은 사건의 배경으로 남는 구조입니다. 이를 영화 비평 용어로는 피해자의 객체화(objectification of victims)라고 부릅니다. 즉 피해자를 주체적인 인물이 아닌 사건을 구성하는 소재로만 다룬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 바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실제 모델이 된 형사가 이 작품을 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 때문에 내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삼는다는 건 누군가의 아직 아물지 않은 시간을 재료로 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 본인도 이 사실을 오래 안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가 걸작인 것과 별개로, 그 무게는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약: 마지막 장면의 정면 응시는 걸작의 증거이지만, 피해자 재현 방식과 실화 윤리의 문제는 영화의 성취와 나란히 기억해야 할 지점입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피해 여성들이 대부분 이름없이, 발견된 상태로만 화면에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몸을 꽤 오래 비추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거의 알려주지 않습니다. 형사들의 무력감은 촘촘하게 그려지는 반면, 피해자는 사건의 배경처럼 놓여있습니다. 2003년 연출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다시 보면 이 불균형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훌륭한 영화라는 평가와 이 아쉬움은 함께 놓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이 카메라를 쳐다보는 이유가 뭔가요?

A. 이 연출은 브레히트적 소외 효과라는 기법으로, 관객이 이야기 속에 편안하게 앉아 있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허구의 벽을 깨는 장치입니다.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고, 그 범인이 어쩌면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도 그 시선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선명했습니다.

 

Q.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은 나중에 잡혔나요?

A. 네, 2019년 이춘재가 자백하면서 사건이 해결됐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2003년 이후 16년이 더 지난 뒤였고, 사건 발생으로부터는 33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형사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Q. 이 영화에서 고문 장면이 웃기게 나오는 게 문제 아닌가요?

A. 저도 여러 번 보면서 그 지점이 계속 걸렸습니다. 초반의 고문 장면이 코믹한 리듬으로 처리되면서 관객이 웃게 되는 구조인데, 실제 고통을 받는 인물들의 피해는 끝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습니다. 영화의 전체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선택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살인의 추억이 그냥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이 영화의 핵심은 범인을 쫓는 과정보다 그것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권위주의적 국가 구조, 과학수사 인프라의 부재,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통제하는 방식의 대응 — 이 모든 것이 맞물린 시대의 초상화에 가깝습니다. 범인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말할 때마다 꼭 함께 꺼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느낍니다. 피해 여성들이 인물이 아닌 배경으로 남은 방식, 고문을 웃음의 소재로 쓴 초반부, 실화를 재료로 삼을 때 수반되는 윤리적 무게 — 이것들을 외면하고 마냥 극찬만 하는 건 제 방식이 아닙니다.

이 영화가 아직 안 봤거나 오래전에 본 뒤 기억이 흐릿해진 분이라면, 단순히 스릴러나 수사극으로 보지 않고 1980년대라는 시대의 구조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다시 보시길 권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두만의 눈이 카메라를 향할 때, 그 시선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 그 질문과 함께 영화관 밖으로 나오는 경험이, 이 영화가 진짜 하려는 말일 겁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late-awaken-insight/22428778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