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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이루고 나서 오히려 공허해진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있습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Soul, 2020)》은 바로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영화입니다. 평생 꿈꾸던 무대에 선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가 공연이 끝난 뒤 멍한 얼굴로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저는 조용히 숨을 삼켰습니다.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 찾아오는 공허함 — 조 가드너의 경우

일반적으로 꿈을 이루면 행복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시험만 끝나면, 이것만 되면, 저기만 가면 진짜 삶이 시작될 거라고요. 그런데 제가 직접 그 순간들을 통과해봤더니, 뒤따라오는 감각은 기쁨보다 허탈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 속 조 가드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뉴욕의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밴드에 드디어 합류하고, 공연도 완벽하게 해냅니다. 그런데 공연장을 나서는 그의 표정은 묘하게 비어 있습니다. 도로테아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조는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평생 이 순간을 기다렸는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요.

그때 도로테아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바다를 찾겠다며 헤엄치는 어린 물고기에게 나이 든 물고기가 "지금 있는 여기가 바다"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어린 물고기는 "이건 그냥 물이잖아요"라며 계속 헤엄쳐 갑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가 2005년 케니언 대학 졸업 연설에서 인용해 유명해진 우화로, 픽사는 이 짧은 에피소드 하나에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해 넣었습니다(출처: Farnam Street, This Is Water).

제 경험상 이 공허함은 목표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정작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의 멍한 얼굴은 꿈이 거짓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꿈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착각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조 가드너: 평생 꿈꾸던 공연을 마쳤지만 공연 후 공허함을 경험
  • 도로테아 윌리엄스: "어린 물고기" 우화로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는 삶을 지적
  • 핵심 메시지: 목적을 이룬 뒤의 허탈감은 목표가 아닌 현재 감각의 부재에서 온다
요약: 꿈을 이룬 뒤 찾아오는 공허함은 목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지 못한 채 목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22번의 불꽃이 가르쳐준 것 — 삶의 목적에 대하여

이 영화의 진짜 핵심은 22번이라는 캐릭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2번은 지구에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공간인 '그레이트 비포(Great Before)'에서 수천 년째 자신의 '불꽃(Spark)'을 찾지 못한 영혼입니다. 여기서 불꽃이란 단순히 재능이나 직업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어떤 감각, 즉 삶에 발을 딛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불꽃은 위대한 사명이나 타고난 재능이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주목한 것은 22번이 조의 몸을 빌려 하루를 살면서 좋아하게 된 것들의 목록입니다. 피자 한 조각의 맛, 지하철 소음, 이발소 아저씨와 나눈 짧은 대화, 하늘에서 떨어진 단풍잎 한 조각. 이것들이 22번의 불꽃 후보였습니다.

그때 조는 단호하게 부정합니다. "그건 그냥 사는 거지, 목적이 아니야." 저는 그 장면에서 조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뤄야 인생에 의미가 생긴다고, 남들이 알아주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요. 이 믿음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뿌리가 깊습니다. 픽사의 제작 노트에 따르면 감독 피트 닥터(Pete Docter)는 성취 중심의 문화가 사람들에게서 '지금 이 순간'을 앗아간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영화를 출발시켰다고 밝혔습니다(출처: Pixar, Soul).

그리고 영화는 정확히 그 지점을 뒤집습니다. 불꽃(Spark)은 삶의 목적(Purpose)이 아니라,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쉽게 말해 "왜 살아야 하나"의 답이 아니라, "살아있으면 이런 게 좋잖아"라는 감각 자체였던 것입니다. 22번이 수천 년 동안 지구에 가기를 거부했던 것도 목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아볼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만들어준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다는 설정이 저는 아직도 가장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조가 피아노 앞에 앉는 장면은 그 모든 것의 결착입니다. 22번이 하루 동안 주머니에 넣어뒀던 물건들, 실 한 뭉치와 단풍잎 조각 같은 것들을 건반 위에 하나씩 꺼내 늘어놓는 장면에서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하루의 전부였다는 걸 그제야 알아본 얼굴이었으니까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이 정도로 조용한 방식으로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요약: 22번의 불꽃은 위대한 사명이 아니라 피자 한 조각처럼 사소한 것에 있었고, 영화는 그것이 삶을 살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말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울에서 불꽃(Spark)이 재능이나 직업을 의미하는 건가요?

A. 영화 안에서도 조가 처음에는 그렇게 오해하고 22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결론은 다릅니다. 불꽃(Spark)은 재능이나 직업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감각, 즉 삶에 발을 딛고 싶어지는 마음을 뜻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가장 오래 생각했는데, 그 구분이 이 영화를 단순한 성장 서사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Q. 소울은 아이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픽사 공식 등급은 PG로, 어린이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죽음, 삶의 의미, 실존적 공허감 같은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에, 어린 관객보다는 10대 이상 또는 성인이 더 깊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경험상 어른이 되고 나서 봐야 제대로 울리는 영화입니다.

 

Q. 그레이트 비포(Great Before)와 그레이트 비욘드(Great Beyond)는 어떻게 다른가요?

A. 그레이트 비포(Great Before)는 영혼이 지구에 태어나기 전 개성과 불꽃을 형성하는 공간이고, 그레이트 비욘드(Great Beyond)는 삶을 마친 뒤 영혼이 향하는 곳입니다. 영화는 이 두 공간을 통해 삶의 시작과 끝을 모두 다루는데, 저는 이 구조 덕분에 죽음을 무섭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삶의 무게를 제대로 전달한다고 느꼈습니다.

 

Q. 도로테아가 들려주는 물고기 이야기는 실제로 있는 이야기인가요?

A. 네, 실존합니다.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David Foster Wallace)가 2005년 케니언 대학 졸업 연설에서 소개한 우화로, "This Is Water"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픽사가 이 이야기를 영화에 직접 인용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대사로 보기 어려울 만큼 문학적 밀도가 높은 장면입니다.

결론

《소울》을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장면은 조가 마지막에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남은 하루를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살아보겠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싱겁게 느껴질 수 있는 대사인데, 저는 그게 목적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임을 알게 됐다는 선언이라고 읽었습니다.

목표를 이룬 뒤 공허했던 경험이 있다면, 혹은 지금도 뭔가를 이뤄야 비로소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이 영화가 꽤 조용하고 정확하게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딱히 목적지 없이요.

참고: https://blog.naver.com/hjdlghdwo/224304760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