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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저는 연인과 사소한 다툼을 한 채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저희는 말 한마디 없이 손을 맞잡고 걸어 나왔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그런 영화입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지만, 결국 그 능력이 가르쳐준 건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의 무게였습니다.

 

극장에서 화해했던 날의 기억

그날 저희가 다퉜던 이유를 지금은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다툼이 가장 골치 아픈 종류입니다. 이유가 뚜렷하면 사과라도 명확히 할 수 있는데, 이유조차 흐릿한 감정의 찌꺼기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하거든요.

그래서였는지 저희는 별말 없이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아오면서 팀(돔놀 글리슨)과 메리(레이철 맥아담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도 모르게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조용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으니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공유된 감정이란 건 어떤 사과의 말보다 빠르게 마음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어바웃 타임은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작품입니다. 그는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등으로 잘 알려진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인데, 이 영화에서는 장르적 쾌감보다 훨씬 조용하고 단단한 감정을 건드립니다. 서사 구조 면에서도 단순한 로맨스물이 아니라 시간-인과율(temporal causality)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시간-인과율이란 특정 행동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결과를 낳는 연쇄 관계를 가리키는데, 영화는 이 개념을 판타지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팀이 과거로 돌아가 행동을 바꿀 때마다 현재가 조금씩 달라지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선 저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슬쩍 손이 닿았고,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대단한 화해의 서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요약: 사소한 다툼도 공유된 감정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녹아내렸고, 그 경험이 어바웃 타임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일상의 사랑을 말하는 방식

어바웃 타임이 다른 시간 여행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주인공이 능력을 사용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팀은 처음에는 사랑을 얻기 위해, 나중에는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오릅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 목적이 조용히 바뀝니다. 팀이 결국 원하는 건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지금 이 하루를 충분히 살아내는 것'이 됩니다.

이 변화는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겪는 내면의 성장 곡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팀의 내러티브 아크는 능력의 '활용'에서 능력의 '포기'로 이어집니다. 더 정확히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완성됩니다. 이 아크가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건 빌 나이가 연기하는 아버지 캐릭터 덕분입니다. 그가 아들에게 건네는 조언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두 번 살아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에는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유독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건, 그게 제 경험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날 극장에서 나오며 '아, 이 사람과 나란히 걷는 이 순간이 사실 대단한 거였구나'를 뒤늦게 느꼈으니까요.

영화의 감정 설계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작곡가 닉 레어드-클라우스가 담당한 영화음악은 감정을 과잉으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피아노와 현악이 주를 이루는 미니멀한 구성으로, 장면의 감정을 관객이 스스로 채울 여지를 남겨둡니다. 이런 음악적 절제(musical restraint)는 감정의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기법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로맨스 영화라고 하면 으레 감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음악을 기대하게 되는데, 어바웃 타임은 오히려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 팀의 시간 여행은 '능력의 활용'에서 '능력의 자발적 포기'로 이어지는 내러티브 아크를 그립니다
  • 빌 나이의 아버지 캐릭터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가장 조용하고 정확하게 대변합니다
  • 미니멀한 영화음악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채우게 합니다
  • 로맨스보다 가족의 유대가 영화 후반부의 실질적인 중심축을 이룹니다
요약: 어바웃 타임의 핵심은 시간 여행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는 '지금을 사는 법'에 있습니다.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어바웃 타임은 2013년 개봉 이후 꽤 오랫동안 꾸준히 회자되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잘 만든 로맨스물'이라는 평가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건 대체로 삶이 지나치게 빠르게 느껴질 때입니다. 무언가를 놓친 것 같은 불안이 슬며시 올라올 때, 팀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릅니다.

영화 속 팀과 아버지의 관계는 단순한 부자(父子) 간의 정(情)을 넘어,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의 관점에서도 읽힙니다. 여기서 애착 이론이란 어린 시절 주요 양육자와 형성한 정서적 유대가 이후 삶 전반의 관계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심리학적 개념입니다. 팀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현재를 충분히 살아내는 태도'는 그가 메리와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 전체에 스며듭니다. 이 점이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 이상의 설득력을 만들어냅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흥행 공식을 연구한 영화학자들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사랑받는 작품들은 대부분 '해피엔딩' 이상의 주제 의식을 품고 있습니다(출처: BFI(영국영화협회)). 어바웃 타임이 그 범주에 든다고 생각하는 건, 이 영화가 끝내 말하는 것이 '사랑을 얻는 법'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제대로 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팀이 마지막에 내린 결론을 제 언어로 다시 쓰면 이렇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도, 결국 남는 건 되돌리지 않아도 괜찮았던 순간들입니다. 그날 저와 연인이 말없이 손을 맞잡고 걸었던 그 짧은 골목이 딱 그랬습니다.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 건 시간 여행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 자체였으니까요.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관객 조사 결과에서도 감동적인 영화를 선택하는 주된 이유로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꾸준히 상위에 오른다는 점은(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어바웃 타임이 왜 개봉 10년이 넘도록 언급되는지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요약: 어바웃 타임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평범한 하루를 제대로 보는 눈'을 이야기하기에,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영화로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바웃 타임, 연인이랑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제가 직접 연인과 함께 봤는데, 오히려 사소한 다툼이 있던 날에 봤음에도 영화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화해가 됐습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조용하게 스며드는 영화라서, 함께 보고 나서 대화 나누기에도 좋습니다. 부담 없이 권할 수 있습니다.

 

Q. 시간 여행 설정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나요?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팀이 시간을 되돌리는 방식은 아주 단순하게 설정되어 있고, 영화 자체도 그 메커니즘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시간-인과율 같은 개념이 등장하지만 SF처럼 복잡하게 파고들지 않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Q. 어바웃 타임이 슬픈 영화인가요, 따뜻한 영화인가요?

A. 제 경험상 두 가지가 동시에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특히 팀과 아버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후반부가 전개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거움이 결국 따뜻함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보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잔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다른 영화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A. 러브 액츄얼리나 노팅힐과 비교하면 유머의 비중은 줄어들고 감정의 밀도는 훨씬 높아졌습니다.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를 기대했다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 대신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무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처드 커티스 필모그래피 중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어바웃 타임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저는 그날 극장 밖 골목을 걷던 장면이 먼저 생각납니다. 영화의 명장면이 아니라, 제 기억 속 아주 사소한 순간이 먼저 온다는 게 이 영화가 제게 한 일을 잘 설명해줍니다. 좋은 영화는 화면 속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보는 사람의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특별한 날보다는 평범한 날 저녁에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대단한 기대 없이 틀어놓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무엇인지 한번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엔 그게 손을 맞잡던 골목이었으니까요.

참고: https://blog.naver.com/mai_bb/224276551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