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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짜리 아이가 우주비행사 헬멧을 벗고 현관을 나서는 장면. 저는 그 몇 초를 보면서 이상하게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영화 〈원더〉는 트리처콜린스 증후군(Treacher Collins Syndrome)을 가진 소년 어기 풀먼이 처음으로 공립학교에 입학하는 이야기인데, 이 영화가 단순히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학교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다 보고 나서 그 판단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첫 등굣길, 헬멧을 벗는다는 것의 무게
어기가 늘 쓰고 다니던 우주비행사 헬멧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그 헬멧이 그 애가 세상과 자기 사이에 세워둔 유일한 벽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걸 스스로 내려놓고 문을 열고 나가는 열 살짜리를 보면서, 저 나이에 저만한 용기를 낼 수 있나 싶어 괜히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어기가 앓고 있는 트리처콜린스 증후군(Treacher Collins Syndrome)은 5번 염색체 이상으로 얼굴 뼈와 조직 발달에 영향을 주는 선천성 희귀 질환입니다. 여기서 선천성 희귀 질환이란, 태어날 때부터 나타나며 발생 빈도가 극히 낮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을 의미합니다. 미국 국립희귀질환기구(NORD)에 따르면 이 증후군의 발생 빈도는 신생아 약 5만 명당 1명 수준으로 보고됩니다(출처: NORD, National Organization for Rare Disorders). 영화는 이 의학적 배경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기가 복도를 걸을 때 다른 아이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리는 장면 하나로 모든 걸 말합니다.
첫 학기를 버티는 과정에서 어기 주변에는 잭과 섬머라는 두 아이가 등장합니다. 잭은 처음에 선생님의 부탁으로 어기와 친해지지만, 할로윈 파티에서 어기 흉을 보다가 들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기 입장에서는 배신이었겠죠. 제 경험상 이 장면이 관객에게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잭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졌어도 순간의 압박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가 다 아는 그 모습이었습니다.
- 트리처콜린스 증후군: 선천성 희귀 안면 발달 장애, 신생아 5만 명당 1명 발생
- 어기의 헬멧: 외부 세계와 자신 사이의 심리적 방어막
- 잭의 흔들림: 선한 의지만으로는 친절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

친절의 의미, 옳음보다 어려운 이유
이 영화에서 브라운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격언이 있습니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친절함을 골라라(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and being kind, choose kind)."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런 문장이 나왔을 때 저는 뻔한 교훈으로 흘려들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쯤 이 문장이 다시 머릿속에 올라오면서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
옳은 판단은 사실 쉽습니다. 따돌림은 나쁘다, 다름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 아는 얘기죠. 어려운 건 그 앎을 오늘 점심시간에 실제로 실행하는 일입니다.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에 가서 앉는 것, 재미없어 보일 걸 알면서도 웃음거리에 동참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친사회적 행동이란, 타인을 이롭게 하려는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으로, 심리학에서는 공감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으로 다룹니다.
잭 윌이 흔들리고 실수하고 다시 어기에게 돌아오는 과정이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부분입니다. 잭은 영웅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나서 용기를 낸 아이입니다. 그 작은 행동이 어기의 한 학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가족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처음에 저는 화면이 누나 비아 쪽으로 넘어갈 때 이해가 안 됐습니다. 왜 지금 이 애 이야기를 하지, 어기는 학교에서 힘든데,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비아는 힘들다고 말할 자격조차 스스로에게 주지 않는 아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동생이 저렇게 힘든데 내가 무슨. 엄마는 자신의 논문을 몇 년째 서랍에 넣어둔 사람이었고요. 이 집에서 티 나는 싸움을 하는 사람은 어기 하나였지만, 티 나지 않는 싸움을 하는 사람은 나머지 전부였습니다.
제가 중간에 답답해했던 비아 챕터가 왜 필요했는지 뒤늦게 알았을 때, 저 자신도 어기만 보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가 저를 그렇게 유도했던 거였죠. 영리한 구성이었습니다.
기립박수가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설계
졸업식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눈물이 난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어기 이름이 불리고, 작은 아이가 앞으로 걸어 나오고, 강당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수를 치는데, 저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어기가 대단해져서라기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 어딘가에서 한 걸음씩 옮겨왔다는 게 그제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인 멀티 퍼스펙티브 내러티브(multi-perspective narrative) 덕분입니다. 멀티 퍼스펙티브 내러티브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서술 방식으로, 독자 혹은 관객이 특정 인물에게 고정된 시선을 갖지 않도록 설계됩니다. 어기, 비아, 잭, 섬머. 각 인물의 챕터는 같은 시간대에 각자가 겪은 다른 싸움을 보여줍니다. 이 구조 덕분에 졸업식 기립박수는 어기 한 명을 위한 박수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온 사람들 전체를 향한 것으로 읽힙니다.
R.J. 팔라시오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2017년 개봉 당시 북미에서만 약 1억 3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고, 어린이와 청소년 문학에서 공감 교육(empathy education)의 대표 텍스트로 자주 인용됩니다(출처: Common Sense Media). 여기서 공감 교육이란,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의 것처럼 이해하고 반응하도록 훈련하는 교육 방식을 말합니다. 영화가 이 개념을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영리한 지점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 하나로 사람이 바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매일 조금씩 다르게 앉고 다르게 인사한 시간이 쌓여서 그 기립박수가 된 겁니다. 어기가 대단해진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기를 볼 줄 알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관점이 맞다고 단언하기보다, 다 보고 나서 이쪽이 더 정직한 독해처럼 느껴졌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더 영화, 아이와 함께 봐도 괜찮은가요?
A.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이라면 함께 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적인 장면 없이 따돌림과 우정, 가족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기가 헬멧을 쓰는 이유나 트리처콜린스 증후군에 대해 미리 간단히 설명해두면 아이가 장면을 더 잘 이해합니다.
Q. 비아 챕터가 왜 나오는 건가요? 어기 이야기만 봐도 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아 챕터가 없으면 졸업식 기립박수의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비아는 "나는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억누르는 아이인데, 이 챕터가 있어야 이 영화가 어기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이야기라는 게 완성됩니다. 어기 쪽만 보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관객 자신도 어기 외의 사람들을 놓치고 있다는 걸 영화가 역이용한 거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Q. 원작 소설이랑 영화 중 어느 쪽이 낫나요?
A. 소설이 낫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멀티 퍼스펙티브 구조는 소설에서 훨씬 더 촘촘하게 전개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인물들이 마음에 남았다면 소설로 이어 가는 순서를 권합니다.
Q. 잭 윌은 좋은 친구인가요, 나쁜 친구인가요?
A. 좋은 친구라고도, 나쁜 친구라고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잭은 선한 마음을 가졌지만 순간의 압박 앞에서 흔들렸고, 그 실수를 알고 나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인물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영웅적으로 그려진 친구보다, 잭처럼 흔들리면서도 다시 선택하는 인물이 훨씬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결론
〈원더〉는 감동을 주려고 설계된 영화처럼 보이지만, 제가 실제로 보고 나서 남은 건 감동보다 불편함에 가까운 무언가였습니다. 점심시간에 아무도 없는 자리에 가서 앉는 일. 재미없어 보일 걸 알면서도 웃음거리에 동참하지 않는 일.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그걸 오늘 실제로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거든요.
이 영화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이해합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보는 동안보다 다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쪽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비아 챕터를 건너뛰지 말고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그 챕터가 없으면 마지막 기립박수의 반이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