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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영화라고 하면 가볍게 넘어가기 쉽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월플라워」(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를 보다가 터널 장면 하나에서 멈췄습니다. 샘이 트럭 짐칸 위로 올라가 두 팔을 벌리는 그 순간, 찰리는 차 안에서 부러운 얼굴로 그걸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이 너무 낯익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딱 저 자리에 있었거든요.

터널 장면이 말하는 것 — 찰리의 성장
「월플라워」는 스스로를 벽에 붙은 꽃(wallflower)이라 표현하는 내성적인 고등학생 찰리의 이야기입니다. 월플라워(wallflower)란 파티나 모임에서 구석에 서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의 심리 상태를 함축합니다. 찰리는 그 단어 그 자체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장면은 터널 신입니다. 샘이 트럭 짐칸 위로 올라가 두 팔을 벌리고, 찰리는 차 안에서 그걸 바라봅니다. 저는 그 찰리의 표정이 정확히 제 표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잘 노는 무리 근처에 앉아서, 웃긴 얘기에 같이 웃긴 웃는데 제 얘기는 한 마디도 못 꺼내던 자리요. 그 감각이 몸에 아직 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찰리는 직접 트럭 짐칸으로 올라갑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우린 지금 이 순간 무한해(We are infinite)"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사를 두 가지 시각으로 보는 분들을 봤습니다. 한쪽에선 너무 낭만적이고 작위적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순간이라고 합니다. 저는 후자 쪽입니다. "무한하다"는 건 영원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다는 말이고, 딱 그 정도의 약속이라서 오히려 믿음이 갔습니다.
이 성장 서사(coming-of-age narrative)는 단순히 내성적인 아이가 친구를 사귀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여기서 성장 서사란 주인공이 심리적·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출발해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가 성장의 계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짚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찰리를 처음 바꾼 건 극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첫 파티에서 패트릭이 잔을 들고 "우리 새 친구에게"라고 말해준 그 한 문장이었습니다. 저도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게 안 보던 친구, 제 취향을 놀리지 않고 궁금해하던 사람, 그 몇 명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 한 명이 되어준 적이 있었나. 벽에 붙어 서 있던 사람에게 먼저 잔을 들어준 적이 있었나.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그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 찰리의 고립감은 외상 후 스트레스(PTSD)와 억압된 기억이 맞물린 복합적 상태로 그려집니다
- 터널 장면은 영화에서 두 번 등장하며, 찰리가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이동하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 "We are infinite" 대사는 영원성이 아닌 현재 순간의 충만함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은 자신의 동명 소설을 직접 각색·연출했으며, 반자전적 성격이 강합니다 (출처: IMDb)
패트릭을 다시 보면 — 방어로서의 유쾌함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패트릭을 그냥 밝고 재밌는 조연으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패트릭이 계속 눈에 걸렸습니다.
패트릭은 미식축구팀의 브래드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브래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기를 두려워하고, 그 비밀은 브래드의 아버지에게 발각되면서 무너집니다. 이후 패트릭은 브래드 무리에게 공개적으로 폭행당하고, 찰리가 뛰어들어 겨우 상황이 끝납니다. 처음 볼 땐 이걸 '유쾌한 친구에게 닥친 슬픈 에피소드'로 읽었는데, 다시 보니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패트릭이 항상 웃고 떠들며 스스로를 '무공해 패트릭'이라 부르던 그 태도 자체가, 웃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자리에서 나온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였던 겁니다. 여기서 방어기제란 불안이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패트릭의 유쾌함이 그 안에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브래드를 단순히 미워하기도 어렵습니다. 브래드가 겁을 낸 건 단순한 나약함이 아닙니다. 1990년대 초 미국 고등학교라는 배경에서 성 정체성을 밝히는 건, 아버지 손에 맞고 팀에서 잘려나가는 게 실제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동성애자 보호 법제가 주별로 극도로 제한적이었던 시대입니다. 90년대 초라는 시간 배경이 향수 어린 장식이 아니라는 걸 두 번째에 알았습니다. (출처: GLSEN(Gay, Lesbian and Straight Education Network)의 청소년 환경 연구 자료는 당시 학교 내 성소수자 학생이 처한 구조적 위험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패트릭을 '상처받은 소수자'라는 한 가지 역할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찰리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고, 록키 호러(Rocky Horror) 무대에서 제일 신나게 노는 사람이고, 무너질 때는 아주 지저분하게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입체적인 한 사람으로 그려졌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패트릭의 이야기는 결국 찰리의 성장 서사 안에 배치되어 있고, 그의 상처가 어떻게 아물었는지는 끝내 따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도와주러 뛰어든 사람의 시점으로만 남은 이야기라는 점은, 이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계속 걸리는 지점이었습니다. 패트릭에게도 그 뒤의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요.

자주 묻는 질문
Q. 월플라워 터널 장면 대사 "We are infinite"가 무슨 뜻인가요?
A. "영원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계 없이 충만하다는 의미로, 현재의 감각에 집중한 표현입니다. 저는 이 대사가 딱 그 정도의 약속이라서 오히려 믿음이 간다고 느꼈습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를 붙잡는 말이거든요.
Q. 월플라워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나요?
A. 네, 스티븐 크보스키(Stephen Chbosky)가 1999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크보스키 본인이 영화 각본과 연출까지 맡았기 때문에 원작의 정서가 비교적 잘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설이 서간문 형식으로 쓰인 반면, 영화는 그 형식을 나레이션으로 흡수했습니다.
Q. 찰리가 결말에서 치료를 받게 되는 이유가 뭔가요?
A. 찰리는 어린 시절 이모 헬렌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을 억압하고 있었고, 영화 후반부에 그 기억이 촉발되면서 해리 증상을 보입니다. 해리(dissociation)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아가 현실로부터 단절되는 심리 반응을 말합니다. 이 설정은 찰리의 내성성과 감정 회피가 단순한 성격이 아닌, 외상 후 반응이었음을 보여줍니다.
Q. 패트릭과 브래드의 관계는 왜 결국 이렇게 끝나나요?
A. 브래드가 겁쟁이라서 그렇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시대와 구조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90년대 초 미국 고등학교에서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것은 학교생활과 가정 모두를 잃는 실제 위험이 있었습니다. 브래드는 그 구조 안에서 선택지가 없었던 것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가 브래드를 악인으로 단순화하지 않은 점은, 다시 봐도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월플라워」를 미국 하이틴 영화로만 분류하면 이 작품이 다루는 것들이 잘 안 보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억압된 기억, 방어기제로서의 유쾌함, 구조가 만든 비밀. 이것들이 모두 찰리와 패트릭이라는 두 사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나서야 그걸 제대로 읽었습니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아마도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과 "짐칸에 올라가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솔직하게 그렸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아직 그 질문의 답을 완전히 내리지 못했습니다. 찰리가 짐칸으로 올라가는 데 영화 한 편이 통째로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아직 차 안에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과, 한 번쯤은 올라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영화를 다시 볼 때는 찰리보다 패트릭 쪽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그쪽에서 다른 질문들이 나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