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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그냥 예쁜 동화로만 봤습니다. 악당도 없고 큰 사건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봤을 때 병원 장면에서 멈추고 말았어요.
작품 정보
원제 | となりのトトロ
감독·각본 |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개봉 | 1988년
러닝타임 | 86분
볼 수 있는 곳 (2026년 9월 16일 확인)
넷플릭스 — 구독 시청
※ 제공처는 자주 바뀌니 시청 전에 확인해보세요.
옥수수 하나를 놓고 돌아갑니다
메이가 사라지고 온 마을이 발칵 뒤집힌 밤이었습니다. 사츠키가 토토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고양이버스가 나타나요. 두 아이를 태운 버스는 논밭 위를 가로질러 병원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병실 문을 열지 않아요. 나무 위에 앉아서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엄마가 아빠와 이야기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창턱에 옥수수 하나를 조용히 놓아두고 그냥 돌아옵니다.
이 장면을 제대로 마주했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원한 게 만남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그 아이들이 필요했던 건 엄마가 웃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습니다. 그 확인 하나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거예요.
옥수수 위에 서툰 글씨로 적힌 엄마에게라는 글자를 아빠가 발견하는 대목에서 한 번 더 무너졌습니다. 아무 말 없이 놓고 간 그 옥수수 하나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던 겁니다.

어른처럼 굴고 있었을 뿐 열두 살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큰 사건이 없습니다. 악당도 없고 위기다운 위기도 없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놓인 상황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있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열두 살 사츠키가 아침밥을 차리고 도시락을 쌉니다. 이런 상황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에요.
사츠키가 무너지는 장면이 이 영화의 진짜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이번에도 귀가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메이가 떼를 쓰자, 내내 의젓하던 사츠키가 폭발했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려요. 어른처럼 굴고 있었을 뿐, 그 아이는 사실 열두 살이었던 겁니다.
자막판과 더빙판을 이어서 틀어봤습니다
이번에 다시 볼 때는 자막판과 더빙판을 이어서 봤어요. 더빙판의 사츠키 목소리가 조금 더 어른스럽게 들려서, 무너지는 장면의 낙차가 오히려 줄어들더군요. 자막판 쪽이 그 아이가 참고 있던 열두 살의 결을 더 선명하게 남겼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관람에서야 알아챈 게 하나 있어요. 사츠키가 우는 장면 직전까지 카메라가 계속 아이의 손을 따라다닙니다. 냄비를 쥐고, 도시락 보자기를 묶고, 메이의 손목을 붙잡는 손이요. 감정을 얼굴이 아니라 손으로 먼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토토로가 해주는 일은 사실 별게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 곁에 토토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토토로가 해주는 일이 뭔가 대단한 게 아니에요.
병을 낫게 해주지도, 엄마를 데려다주지도 않습니다. 비 오는 정류장에 같이 서 있어주고, 도토리를 심게 해주고, 밤에 하늘을 한 바퀴 날게 해줄 뿐이에요. 아이들이 놓인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 돌이켜보면 제가 힘들었던 시기를 버틴 것도 누가 상황을 해결해줘서가 아니었습니다. 별말 없이 옆에 있어준 사람들, 그 시절에만 있던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토토로가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도 그래서 슬프게 느껴집니다. 아이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언가를 우리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다는 것. 그 사실이 조용하게 아픕니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번엔 사츠키의 얼굴을 집중해서 보시길 권해요. 그 아이가 내내 참고 있는 게 보이기 시작하면, 병원 장면의 옥수수가 왜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지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엄마는 결국 어떻게 되나요?
A. 상태가 좋아졌다는 게 간접적으로 암시됩니다. 병원 장면에서 아빠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오고, 엔딩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장면이 등장해요.
Q. 자막판과 더빙판 중 어느 쪽이 나은가요?
A. 둘 다 봤는데 저는 자막판 쪽이 좋았습니다. 사츠키가 참고 있는 결이 더 선명하게 남거든요. 아이와 함께 보실 거면 더빙판이 편하고요.
Q. 아이보다 어른이 봐야 한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꽤 사실에 가깝습니다. 어릴 땐 토토로가 귀엽고 고양이버스가 신기한데, 어른이 되면 사츠키의 무게와 병원 장면의 절제가 다르게 읽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