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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짜리가 히틀러를 상상 속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코미디로 시작하는데, 웃다가 어느 순간 웃을 수가 없어집니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 출연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스칼렛 요한슨, 토마신 맥켄지 / 국내 개봉 2020년 2월 5일 / 12세 이상 관람가
볼 수 있는 곳 (2026년 9월 15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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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려고 만든 히틀러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조조에게 히틀러는 상상 속 친구입니다. 실제 인물이 아니라 그 아이 머릿속에 사는 존재예요. 유겐트 생활에 적응 못 하고 겁쟁이 토끼라고 놀림받을 때마다 나타나서 어깨를 두드려줍니다.
그런데 이 히틀러가 우스꽝스럽습니다. 과자를 먹고, 어린애처럼 투정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죠. 처음엔 그냥 웃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이 역을 감독 본인이 직접 연기했더군요. 그리고 그 감독의 어머니가 러시아계 유대인입니다. 히틀러가 평생 증오하고 홀로코스트로 희생시킨 바로 그 사람들이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까 이 캐스팅이 농담이 아니라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서웠던 건 후반부였어요. 엘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조조 앞에 나타난 히틀러가 갑자기 나치즘을 주창하는데, 그때만큼은 연설 습관까지 그대로 살아납니다. 조조가 흔들릴수록 그 존재가 커지는 거죠. 상상 친구가 아니라 그 아이 안에 심어진 이념 자체였다는 게 그제야 보였습니다.
엄마가 춤 이야기를 하던 저녁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로지가 조조에게 사랑을 설명해주는 장면입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 춤이라고 말해주는 엄마 앞에서, 조조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조조는 사랑 같은 건 시시하다고 대꾸해요. 열 살짜리가 전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로지는 다투지 않습니다. 설득하지도, 네 생각이 틀렸다고 혼내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가 믿는 걸 계속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광장에서 구두를 발견하는 장면이 그렇게 아팠습니다. 카메라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처형대에 매달린 구두와 코트 자락만 비추거든요. 조조와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던 그 장면에서 신고 있던 구두예요.
그리고 조조가 주저앉아 울다가, 엄마가 늘 해주던 것처럼 풀린 구두끈을 묶으려고 합니다. 서툴러서 제대로 못 묶고 다시 울죠. 저는 그 장면에서 화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이념은 아이 눈으로 보면 우스꽝스럽습니다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이 아이의 시점이라는 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조는 나치즘을 신념으로 믿는 게 아니에요. 그냥 멋있어 보여서 따라 하는 겁니다. 유대인에게 뿔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 소년단 제복을 자랑스러워하고, 토끼 한 마리를 못 죽여서 겁쟁이 소리를 듣죠. 어른들이 목숨 걸고 지키는 그 이념이 열 살짜리 입을 통과하는 순간 얼마나 유치한지가 드러납니다.
그게 이 영화의 무기였어요. 나치즘을 정면으로 비판하면 관객은 이미 아는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이의 장난감처럼 그려놓으면 관객이 먼저 웃고, 웃고 나서야 자기가 무엇을 비웃었는지 알게 되죠.
엘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조는 유대인이 어떤 존재인지 책에서 배운 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장 안에서 실제로 만난 사람은 그 설명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아요. 뿔도 없고, 무섭지도 않고, 그냥 자기보다 조금 큰 여자애였죠.
결국 조조가 배운 걸 버리게 되는 과정에 논리적인 설득은 없습니다. 엄마가 매일 보여준 태도와, 벽장 안의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에요. 증오가 학습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지우는 방법도 학습과는 좀 다른 데 있다는 뜻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쟁 영화인데 아이와 봐도 되나요?
A. 12세 이상 관람가이고 잔인한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중반 이후 분위기가 확 무거워져서, 아이와 본다면 이야기를 나눌 준비는 필요합니다.
Q.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슷한가요?
A. 아이의 시선으로 전쟁을 그린다는 점은 같습니다. 다만 인생은 아름다워가 아버지가 만든 거짓말을 따라간다면, 이쪽은 아이가 이미 믿고 있던 것이 깨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Q. 상상 속 히틀러는 왜 등장하나요?
A. 조조가 가진 나치즘에 대한 환상을 눈에 보이게 만든 장치입니다. 조조의 생각이 바뀔수록 그 존재도 함께 변해가는 걸 보시면 재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