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교구 사제 249명의 아동 성범죄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용감한 기자들의 영웅담일 거라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 그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영화가 겨누는 건 악당이 아니라, 눈을 감기로 선택한 도시 전체였습니다.인명부 한 장이 드러낸 것영화에서 제 등이 서늘해진 건 스포트라이트 팀이 교구 인명부(diocesan directory)를 쌓아놓고 뒤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교구 인명부란 가톨릭 교구 소속 사제들의 부임지와 이동 기록이 연도별로 정리된 공식 문서를 말합니다. 극적인 액션도 없고, 그냥 사람들이 종이를 한 장씩 넘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그런데 기록을 대조하다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한동안 걸음이 떼지지 않았던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저는 손에 꼽히는 그 목록 맨 앞에 봉준호 감독의 (2003)을 올려둡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 영화는 범인을 쫓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묵직한 것을 남겼습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시대적 맥락 —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실패였습니다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박두만이라는 형사에게 분노했습니다. 눈만 보면 범인을 안다고 믿고, 자백은 발로 받아내는 사람. 그런데 여러 번 다시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무능이 사실은 한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사건 현장에 경운기가 들어와 발자국을 죄다 뭉개버립니다. 지원을 요청해도 병력은 데모 진압에 나가 있어요. 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