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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황금시대의 환상, 노스탤지어, 현재)

지금 사는 시대가 유독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오래된 영화나 음악에 손이 갔는데, 어느 순간 그게 도피인지 취향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디 앨런의 2011년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이 낭만인지 회피인지, 이 영화는 웃기면서도 꽤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헤밍웨이가 읽기를 거절한 이유 — 황금시대의 환상이 작동하는 방식파티에서 누군가를 소개받았는데 그게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면 어떤 표정이 될까요. 주인공 길(오웬 윌슨)이 딱 그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제가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길의 얼떨떨한 표정이 정확히 제 표정이었습니다. 책으로만 알던 대문호가 눈앞에 서 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웃기는데, 그 다음 대사에서 소리..

카테고리 없음 2026. 8. 27. 09:47
스포트라이트 (인명부, 침묵의 공범, 탐사보도)

2002년,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톨릭 교구 사제 249명의 아동 성범죄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용감한 기자들의 영웅담일 거라 생각했는데, 보고 나서 그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영화가 겨누는 건 악당이 아니라, 눈을 감기로 선택한 도시 전체였습니다.인명부 한 장이 드러낸 것영화에서 제 등이 서늘해진 건 스포트라이트 팀이 교구 인명부(diocesan directory)를 쌓아놓고 뒤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교구 인명부란 가톨릭 교구 소속 사제들의 부임지와 이동 기록이 연도별로 정리된 공식 문서를 말합니다. 극적인 액션도 없고, 그냥 사람들이 종이를 한 장씩 넘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그런데 기록을 대조하다 보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8. 26. 09:15
인생은 아름다워 (게임 규칙, 홀로코스트, 부성애)

코미디 영화가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그 조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그 판단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1997년 개봉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주연의 는 제가 본 영화 중 웃다가 숨이 막힌 유일한 작품입니다.게임 규칙 — 같은 공간, 완전히 다른 두 세계홀로코스트(Holocaust)를 다루는 영화는 대개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택합니다. 여기서 홀로코스트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집단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역사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그 참혹함을 그대로 직시하거나, 아니면 감정적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런데 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제 마음이 실제로 무너진 건 수용소 도착 직..

카테고리 없음 2026. 8. 25. 12:45
라푼젤 (등불 장면, 진짜 나, 고델)

어릴 때 봤던 영화를 다시 틀었다가 한 장면에서 멈춰버린 적이 있습니다. 화면이 예뻐서가 아니라, 거기 담긴 감정이 뒤늦게 와서 박혔거든요. 저한테 그 장면은 라푼젤의 등불 씬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땐 그냥 예쁘다고 넘겼는데, 다시 보니 그 장면 하나에 이 영화의 전부가 들어 있었어요.등불 장면, 왜 그렇게 뭉클한가제가 처음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불빛이 아니라 라푼젤의 손이었습니다. 배 위에 앉아서 계속 손을 만지작거리는 그 모습이요. 평생 꿈꿔온 것을 드디어 눈앞에 두고 오히려 굳어버리는 표정. 만약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어떡하나, 이걸 보고 나면 그 다음엔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그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어요.이건 단순한 설렘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목표 달성..

카테고리 없음 2026. 8. 23. 20:36
인턴 (벤 위틀리, 경험의 태도, 세대 협업)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가볍게 볼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한 장면이 계속 남아 있었어요. 정장을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70대 남성이 스타트업 사무실로 첫 출근하는 장면. 그게 왜 이렇게 오래 마음에 걸렸는지, 쓰면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벤 위틀리가 보여준 것 — 경험의 태도영화 《인턴(The Intern, 2015)》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벤 위틀리는 37년 경력의 전직 임원입니다. 그가 시니어 인턴십(Senior Internship) 프로그램에 지원해 패션 이커머스 스타트업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시니어 인턴십이란 은퇴 이후의 고령자가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 기업들이 이 프로그..

카테고리 없음 2026. 8. 22. 11:15
세얼간이 시청 리뷰 (반전, 알이즈웰, 란초)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인도 뮤지컬 영화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시간짜리라는 말에 미루고 또 미뤘죠.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마지막 반전 장면에서 "어?" 소리를 입 밖으로 냈습니다. 란초가 누구인지 끝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제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순간이었습니다.반전 구조: 란초의 정체와 이 영화가 숨긴 것파르한과 라주가 5년 만에 란초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납니다. 주소를 어렵게 알아내서 도착했더니,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는데 돌아본 얼굴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화면을 멈추고 다시 되감았습니다. 제가 영화 내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이름이, 사실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일반적으로 인도 상업영화..

카테고리 없음 2026. 8. 21. 08:20
어거스트 러쉬 (라스트신, 음악적 믿음, 재회)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의 생사조차 몰랐던 세 사람이, 아무런 약속도 없이 같은 공원에 모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숨을 참았습니다. 영화 의 라스트신은 그냥 감동적인 결말이 아니라, 영화가 처음부터 쌓아온 논리의 완성이었습니다. 말이 없어도 전부 전달된 라스트신일반적으로 감동적인 재회 장면에는 대사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그 몇 초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달했습니다.어거스트가 무대에 올라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지휘하기 시작하면, 카메라는 관객석으로 넘어갑니다. 라일라가 음악에 이끌려 걸어 들어오고, 반대편에서 루이스가 걸어 들어옵니다. 두 사람 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그 소리가 왜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지 모..

카테고리 없음 2026. 8. 20. 07:15
트로이 영화 리뷰 (브리세이스, 신의 부재, 전쟁의 잔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를 다시 보면서, 저는 이게 단순한 전쟁 스펙터클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영웅들의 이름은 모두 남았는데, 정작 전쟁이 끝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이 글은 그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스, 그 한 장면이 남긴 것제가 직접 이 영화를 다시 돌려봤는데, 멈추게 된 장면이 있었습니다.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스가 밤을 함께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습니다. 전장에서만 살아온 남자가 처음으로 죽음 이후를 궁금해하지 않는 얼굴을 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는 그 표정 하나 때문에 진심으로 두 사람이 그냥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 같은 건 남기지 말고, 어디 조용한 데서 살았으면 하고요.실제로 아킬레스..

카테고리 없음 2026. 8. 19. 19:05
위대한 쇼맨 (소름 장면, 실존 논란, This Is Me)

감동적인 뮤지컬 영화가 실존 인물의 행적을 얼마나 미화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을 보면서 'This Is Me' 한 장면에 온몸이 굳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동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 무대를 만든 사람에 대한 불편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이 글은 그 두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소름 장면 — 문을 밀고 나오는 순간제가 직접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몸이 먼저 반응했던 건 'This Is Me' 장면이었습니다. 바넘이 상류층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단원들에게 뒤에 숨어 있으라고 하는 장면이요. 레티가 문 뒤에 조용히 서 있다가,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합니다.그런데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올수록 소리가 커집니다. 뒤에서 단원들이 하나둘 따라 나오고요. 저는 그 순간 소름이 돋았는데..

카테고리 없음 2026. 8. 18. 11:50
겨울왕국 (문닫힘, 자기수용, 사랑의 해방)

겨울왕국(Frozen)은 2013년 개봉 직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디즈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애니메이션이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하는 장면은 화려한 얼음성이 아니라, 어린 엘사가 안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방문을 닫아버리던 그 찰나였습니다.닫힌 문 뒤에서 흐른 시간사고가 난 직후, 부모님은 엘사를 방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안나는 영문도 모른 채 문 앞에 서서 "같이 눈사람 만들자"고 노래하듯 부르죠.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고, 카메라는 그 문 앞에서 안나가 나이를 먹어가는 장면으로 조용히 넘어갑니다.제가 직접 겪어보니, 형제자매 사이라는 건 참 묘합니다. 매일 붙어 있고 사소한 일로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게 되는 시기가 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8. 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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