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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31)
택시운전사 (검문소 장면, 기록의 값, 이름 없는 사람들)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면 처음엔 놓쳤던 장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도 처음엔 택시운전사를 '5·18을 배경으로 한 감동 영화' 정도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다시 봤을 때, 검문소 장면에서 또 눈물이 났고, 그제야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한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것.검문소 장면: 대사 없는 선택이 남긴 것극적인 결단의 순간이라면 보통 음악이 깔리고, 대사가 나오고,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천천히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깨달은 건, 가장 묵직한 장면일수록 오히려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만섭의 택시가 검문에 걸리는 장..

카테고리 없음 2026. 8. 16. 17:14
아이언맨 리뷰 (정체 공개, 변화, 재능)

저는 아이언맨 1편을 극장에서 봤을 때 마지막 30초 때문에 한동안 멍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대본을 집어던지는 그 작은 동작 하나가 액션 장면 전부보다 오래 남았거든요. 이 영화가 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출발점으로 불리는지, 저는 그 순간에 답이 다 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정체 공개 — 히어로 장르의 문법을 깨버린 마지막 30초히어로 영화에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이중 정체성(Dual Identity), 쉽게 말해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을 숨기는 것이 이 장르의 가장 오래된 서사 문법입니다.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을 숨기고,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를 감춥니다. 저도 히어로 영화를 볼 때면 늘 "저 사람 정체가 언제 들킬까"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쪽이었습니다. 그게 당연한 긴장감이라고 여겼으..

카테고리 없음 2026. 8. 15. 10:30
셔터 아일랜드 (마지막 대사, 진실, 선택)

영화를 끝까지 보고도 주인공이 진짜로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처음 봤을 때 그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대사 한 줄이 전부를 바꿔놨어요. 괴물로 살 것인가, 선량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그 질문이 멧 번이고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진짜 미친 건지, 알면서 모르는 척한 건지영화를 다 봤는데 주인공이 실제로 정신질환자였는지 아닌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앤드루 레디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정신이 돌아온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쪽으로 읽혔거든요.이 해석의 근거가 되는 개념이 바로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입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란 극심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으로 인해 하나의..

카테고리 없음 2026. 8. 14. 14:29
올드보이 (펜트하우스 반전, 말의 무게, 미도의 자리)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복수극이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누가 가뒀는지 찾아내서 갚아주는 이야기라고요. 그런데 펜트하우스 장면에서 앨범이 펼쳐지는 순간, 제가 두 시간 가까이 따라온 이야기의 구조가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던 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걸 봐도 되나 싶은 마음과 눈을 못 떼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펜트하우스 반전, 그리고 말의 무게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가 강하게 밀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 스릴러로 분류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수, 근친, 기억의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1. 10:55
업 오프닝 (몽타주, 애도, 모험책)

픽사 애니메이션 「업(Up, 2009)」의 오프닝 시퀀스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약 4분 만에 한 부부의 일생을 통째로 담아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영화가 시작한 지 십 분도 안 됐는데 이미 울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세번째 볼 때는 일부러 소리를 끄고 오프닝만 다시 돌려봤습니다. 마이클 지아치노의 음악이 이 시퀀스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결과는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음악이 없어도 여전히 목이 메었습니다. 병원 복도의 파란 조명, 엘리가 앉아있던 의자의 높이. 칼이 넥타이를 매만지는 손. 이미지만으로 이미 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감정을 만들어낸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감정에 손을 얹고 있었을 뿐이더군요...

카테고리 없음 2026. 8. 10. 11:34
1987 (역사적 맥락, 인물 구조, 서사 한계)

극장을 나오면서 한동안 걷지 못했습니다. 정의가 왜 늘 누군가 죽고 난 다음에야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그 값을 왜 항상 가장 어린 사람들이 치르는지. 영화 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해 6월 항쟁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낯섦이었습니다. 영웅 한 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연쇄가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 그 구조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맥락: 1987년 그 겨울이 품고 있던 것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사망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말로 사건을 덮으려 했습니다. 이른바 '탁 치니 억'으..

카테고리 없음 2026. 8. 8. 11:34
살인의 추억 (시대적 맥락, 마지막 장면, 피해자 재현)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한동안 걸음이 떼지지 않았던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저는 손에 꼽히는 그 목록 맨 앞에 봉준호 감독의 (2003)을 올려둡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 영화는 범인을 쫓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묵직한 것을 남겼습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시대적 맥락 —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실패였습니다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박두만이라는 형사에게 분노했습니다. 눈만 보면 범인을 안다고 믿고, 자백은 발로 받아내는 사람. 그런데 여러 번 다시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무능이 사실은 한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사건 현장에 경운기가 들어와 발자국을 죄다 뭉개버립니다. 지원을 요청해도 병력은 데모 진압에 나가 있어요. 피..

카테고리 없음 2026. 8. 7. 16:23
다크 나이트 (배트맨, 하비덴트, 조커)

히어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환호 대신 사이렌 소리를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면, 그게 과연 승리일까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지켰는데 이름은 범죄자가 되는 결말. 그 씁쓸함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관람 환경에 따라 체감이 꽤 달라집니다. 놀란 감독이 오프닝 은행 강도 장면과 홍콩 시퀀스 등 여러 장면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입니다. IMAX 상영본에서는 그 구간만 화면 위아래가 확 열리면서 시야를 덮습니다. 저는 재개봉 IMAX 상영관에서 다시 봤는데, 조커가 은행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의 압박감이 집에서 볼 때와 비교가 안됐습니다. 화면비율이 바뀌는 순간 관객의 호흡도 같..

카테고리 없음 2026. 8. 6. 13:17
레미제라블 (립싱크, 자베르, 은촛대)

솔직히 저는 레미제라블을 그냥 유명한 뮤지컬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2012년 톰 후퍼 감독 작품이고,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것도 나중에 찾아봤을 정도예요. 막상 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히 잘 만든 뮤지컬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판틴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서 저는 화면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립싱크 없이 찍은 현장 녹음, 그게 그 눈물의 정체였습니다일반적으로 뮤지컬 영화는 미리 녹음된 음원에 맞춰 배우가 립싱크(lip sync)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립싱크란 사전 녹음된 음악을 틀어놓고 배우가 입 모양만 맞추는 방식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가 이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음질 안정성과 연기의 완성도를..

카테고리 없음 2026. 8. 5. 10:52
극한직업 후기 (수원왕갈비통닭, 무전기 장면, 경찰수사)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이렇게 소리 내서 웃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극한직업은 2019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1,626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근데 제가 실제로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긴 영화"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웃음 뒤에 꽤 묵직한 무언가가 깔려 있었거든요.수원왕갈비통닭 장면이 왜 그렇게 웃겼나제가 제일 크게 웃었던 건 무전기 장면이었습니다. 영호가 밖에서 잠복 중에 이무배 일당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다급하게 무전을 치는데, 아무도 받질 않아요. 이유가 뭐냐면, 팀원들이 전부 가게 안에서 닭 튀기느라 무전기를 꺼놨거든요. 전화도 안 받고, 잠복수사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겁니다.그 장면에서 극장 전체가 뒤..

카테고리 없음 2026. 8. 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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